지구의날

온세상이 녹색으로 물드는 그날을 꿈꿉니다.

지구의날이란?

2000년 지구의날 기념시

시작은 늘 그러할 것이다. 맨 처음 어떤 엉뚱한 한 사람이
금남로에 한 그루 사과나무 심을 꿈을 꾸면서부터
그 다음엔 떠나간 새들이, 벌과 나비들이 찾아드는 충장로
댐에 막히고 가파른 시멘트 수로에 막힌 물고기떼가
광주천을 넘어 지금은 복개된 하천으로 거슬러오는 날들을
꿈꾸면서 새로운 생명의 5월 광주는 탄생할 것이다.

우리가 준비해가고 있는 미래는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러하며, 내일도 또한 그러할 새로운 희망의 광주는
그 어떠한 학살이나 야만을 거부하는 것으로부터
과연 무엇이 잘 사는 것이며 아름다운 일인가 묻는 것부터
시작될 것이다. 놀라워라, 내가 밟아 가는 이 페달 하나가
더 이상 숨쉴 수 없는 공기, 마실 수 없는 물을 살리는 출발점이라니!
썩고, 병들고, 찢긴 하늘과 땅, 구름과 별과 한 형제임을 알게 하다니!

그러니, 너희 살아남은 자들이여
당장엔 어색하고 미약할지라도, 언젠가는 자동차 대신
다람쥐가, 무당벌레가, 개구리가 찾아드는 금남로를 꿈꾸자
그리하여 가로수 가지에 새들이 알을 까고, 눈먼 두더지가
날마다 굼벵이를 찾아 흙을 뒤집는 날들을 꿈꾸자
그대들이여, 왜 너흰 빌딩 유리창 창틀마다 꽃을 내걸고
골목길마다 사과 열매 주렁한 내일이 불가능하다고 고개 젓는가
왜 시도해보기도 전에 도청 앞 분수대 자리에 목마른 짐승들과
사람들 모두가 목축이고 갈 샘물이 솟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대들이여, 그러나 바로 그 꿈이 너와 나를 여기 있게 했다.
그 꿈의 페달을 힘차게 밟아가지 않는 한, 오래 지속될 미래,
단절되지 않는 광주는, 서울은, 뉴욕은 북경은 없으리라
또 다른 재앙, 뜻하지 않은 불행, 못보던 어둠의 그림자가
그대들 영혼을 덮치고 그대 사는 초록별을 죽음의 궁륭으로 만들리라
모든 것들은 한 어머니에서 태어났고, 그것 때문에 모두가 서로의 이웃이고
혈육임을 아는 것으로부터 새로운 시작의 광주의 날들이 열리리라.
아주 얼토당토않은 꿈을 꾸는 작은 나비의 날개 짓을 시작하면서부터
살인 무기를 녹여 쟁기 보습을 만들고 마침내 모두가 하나되는 날들이
시작되리라.

지구의날에 부쳐
임 동 확 (시인)